Popple

알터밀레: 미니 포션 본문

마비노기

알터밀레: 미니 포션

  G   2017. 8. 1. 14:09



미니 포션을 먹고 소인이 된 알터 설정으로 알터밀레

 

 

 

 

 

Mabinogi C6 Fanfiction 알터 × 밀레시안

 

Copyright2017 All rights reserved by G(@best_duckoo)

 

 

 

 

 

 

 

 

 

 

 아발론게이트에서 보초를 서던 알터에게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어. 하루에 두어 번밖에 없는 단비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이때 알터는 무조건 게이트 옹성 내부의 간이 공간에서 선잠을 자야 했어(시간이 있을 때 자 두지 않으면 야간 보초를 절대 버틸 수 없을 테니까). 알터는 잠을 청하기 전에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보급품 창고에 들어가 어떤 병을 집어 들었어. 병이 식료품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알터는 그것이 생수임을 의심치 않고 단숨에 들이켰어. 하지만 불행히도 생수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알터의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어. 마치 마취제를 투여 받는 것처럼 나른한 약 기운이 서서히 퍼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알터는 주저앉아 바닥을 짚고 호흡을 가다듬었어.


 그렇게 스스로를 열심히 진정시키니 몸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어. 겨우 정신을 차린 알터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살펴보려는데 어쩐지 보급품 창고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넓어 보였고, 쌓여 있는 보급품들도 훨씬 더 커져 있었어. 보급품 창고가 커진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작아졌다는 사실을 알터가 깨닫기까지 얼마 걸리지는 않았어. 마신 음료가 미니 포션이었다는 것 또한 알아차린 알터의 얼굴에 당혹감과 동시에 안도의 낯빛이 떠올랐어. 혹시나 독약을 먹은 것은 아닐까 염려했었으니까. 미니 포션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원상태로 되돌아오니 알터는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 예상치 못한 부주의로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을 다 날려먹게 생겼지만 알터는 독약을 먹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푹신한 의류품 자루 위에 편히 기대어 그저 기다리기만 했어.


 하지만 시간이 웬만큼 지났는데도 몸이 돌아오지 않았어. ‘일반적인미니 포션은 아닌 모양이었어. 휴식 시간도 거의 끝나가서 마음이 조급해진 알터는 일단 밖으로 나가 슈안을 만나 보기로 했어. 보급품을 슈안이 관리하고 있으니 그와 얘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알터는 고맙게도 문 아래에 시원스레 나 있는 쥐구멍 사이로 겨우 기어서 밖으로 나갔어. 나가자마자 마주친 게 카오르의 발뒤꿈치라서 하마터면 밟힐 뻔했지만 조심히 빠져나와 슈안에게 다가갔어. 평소라면 몇 걸음 만에 다다를 가까운 거리인데 그런 몸으로 걸으려니 꽤나 애를 먹게 됐어. 그때 마침 밀레시안이 아발론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어. 밀레시안의 우람한 자태를 마주하자 몸이 작아진 건 아랑곳 않고 반가운 마음에 밀레시안을 꽥꽥 부르기 시작했어. 작게 쫑쫑거리는 알터의 소리를 어찌어찌 듣게 된 밀레시안이 자신의 발에 찰싹 달라붙은 알터를 집어다 올렸어.


 알터? 알터 맞죠?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그게요

 슈안?”


 슈안의 끙 앓는 소리에 밀레시안이 그쪽을 돌아봤어. 골치가 아픈 듯 슈안이 제 머리를 짚으며 신음하고 있었어.


 이런……. 보급품으로 들여온 임무용 미니 포션을 마셨나 보네요. 장부 작성만 다 하면 바로 정리하려고 했는데 그새. 그거 효과가 기존 것보다 더 뛰어나서 며칠은 지나야 되돌아올 겁니다.”


 슈안의 한탄 섞인 소리에 알터와 밀레시안이 동시에 아연실색했어. 이러한 상황을 아벨린에게도 전하자혼나는 게 두려웠던 알터는 아벨린에게 알리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어.역시나 아벨린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지만, 너무 바빠 경황이 없던 나머지 정리를 잠시 미루었던 슈안을 탓하기도 곤란했고 아무 사정도 모르고 포션을 마신 알터를 탓하기도 곤란했기 때문에 그의 분노는 금방 누그러졌어. 아벨린은 하는 수 없이 알터에게 병가를 허락했어.


 얼떨결에 휴가를 받은 알터였지만 다른 곳에 나가지도 못하고 아발론게이트 옹성 내부의 간이 숙소에서만 쉬게 됐어. 밀레시안은 알터가 내심 걱정이 되었는지 특별조원들에게 임무 지시를 내리자마자 알터를 보기 위해 옹성으로 들어갔어. 알터는 벽에 사슬로 조잡하게 고정된 나무 붙박이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알터 본인이 끌어와 덮은 건지, 혹은 누가 덮어준 건지 하얀 수건을 이불삼아 덮고 있었어. 밀레시안이 다가오자 알터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 밀레시안은 수건을 덮고 있는 미니 알터가 퍽 귀엽다고 생각하다가도 왠지 시무룩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곧바로 사심을 접었어.


 알터, 몸은 좀 어때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기분만 조금 이상할 뿐이지멀쩡합니다.”


 알터 본인은 괜찮다고 했지만 영 기운이 없어 보여서 더 걱정하는 밀레시안이었어. 알터의 곁에 조심스레, 행여나 알터를 깔아뭉갤까 충분히 주의하며 자리를 잡아 앉았어. 그대로 침묵이 이어져 분위기가 어색해졌지만 아무런 말이나 내뱉어서 알터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어색한 침묵을 유지하는 게 더 낫다 싶어 밀레시안은 입을 꾹 다물었어. 다행히도 알터가 바로 운을 떼어서 어색함은 오래 가지 않았어.


 밀레시안 님, 저 정말 한심하죠. 다른 분들께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어야 할 시기에 이러고 있네요. 슈안 님께도, 아벨린 님께도 민폐만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하고 밀레시안 님께도 부끄럽게 됐어요.”


 알터가 수건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리는 소리로 한탄하기 시작했어. 얼굴 묻은 채로 무어라 더 얘기하고 있는데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어. 알터의 한탄이라 함은 늘 레퍼토리가 같았고, 지금 하는 이야기 또한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밀레시안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왠지 다른 때의 한탄보다 더욱 절절하게 와 닿았어. 단순히 몸이 작아진 것만으로 더 불쌍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밀레시안이 픽 실소가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아냈어. 밀레시안은 집게손가락으로 알터가 얼굴을 묻고 있는 수건을 살짝 걷어냈어. 수건을 빼앗긴 알터가 얼굴을 팔로 쓱쓱 문지르더니 천천히 밀레시안을 올려다봤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맺힌 이슬 너머로 어른거리는 풀색 눈동자는 아무리 몸이 작아졌다 한들 알터의 것이 분명했어. 밀레시안은 검지로 알터의 머리를 부드러이 쓰다듬어 줬어.


 슈안도 아벨린도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던데요? 다들 알터 몸 상태부터 걱정하셨지 민폐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으셨을 거예요.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요. 알터가 실수한 것도 아니고 상황이 그냥 그렇게 됐을 뿐이죠.”

 그래도 전 스스로가 한심한걸요. 그게 만약 독이었다면…….”

 정말 독이었다면 슈안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창고에 그냥 뒀을 리가 없잖아요. 알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애써 생각하면서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밀레시안의 손가락이 장난스럽게 알터의 볼을 누르자 알터가 힘없이 웃었어.


 마치 아벨린 님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만큼 아벨린이 옳다는 거겠죠. .”


 밀레시안이 알터 앞에 손바닥을 펴 내려놓았어. 알터가 어리둥절하게 밀레시안과 손바닥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제 손을 그 위에 얹었어. 아마 악수의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지만 밀레시안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어. 밀레시안이 다른 한쪽 손으로는 알터의 어깨를 잡았어.


 모처럼 휴가인데 침대 위에서만 보내려 하지 말고 같이 나갑시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 몸으로 게이트에서 나가는 것만 해도 한참일 거예요.”

 일단 내 손 위에 올라타 봐요.”


 같이 나가자는 말에 알터가 망설이다가 어깨를 잡고 당기는 거대 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밀레시안의 손바닥을 밟고 올라섰어. '내가 감히 밀레시안 님의 손바닥을 밟고 있다니!' 따위의 감상을 길게 즐길 새도 없이 휘청거리며 몸이 위로 떠오르자 알터는 평형을 잃어 그만 손바닥 밖으로 나자빠질 뻔했어. 그러기 전에 재빨리 밀레시안이 알터를 잡아주어 자신의 어깨에 올려 주었어. ‘떨어지지 않게 꽉 잡고 있어요.’ 거대한 견장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알터가 밀레시안의 말에 괜스레 긴장하여 거대한 옷깃을 꽉 쥐어 잡았어.


 순식간에 시야가 흐려지고 익숙한 신성력의 기운이 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듯싶더니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발론게이트가 아니었어. 그렇다고 낯선 장소 또한 아니었어. 뒤로는 에일리흐 왕국 수도의 화려한 도시가, 바로 앞에는 신비롭고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스톤헨지가 펼쳐져 있었어. 아마도 밀레시안이 신성력으로 무슨 수를 써서 아발론게이트 옹성 안에서 타라 스톤헨지로 바로 오게 한 것 같았어. 밀레시안은 종종 함께 아발론게이트에 있다가도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퍽 있곤 했으니까, 알터는 그러려니 했어. 하지만 그 뒤로 벌어지는 상황은 알터가 도저히 그러려니 넘길 수가 없었어. 밀레시안이 그림자 세계 관련 임무들이 공시되어 있는 게시판을 죽 살펴보다가 어떤 항목에 체크하고는 스톤헨지 위로 올라갔어. 올라서기가 무섭게 육체고 정신이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감각이 두 사람을 휩쌌어.


 텅 빈 왕성 게이트 홀과 눅눅하고도 미지근한 공기의 느낌으로 알터는 설마하니 정말로 그림자 세계에 들어왔음을 알아차렸어. 알터는 그림자 세계라고 해 봐야 밀레시안을 통해 들은 얘기로 그 존재만 알고 있었을 뿐 직접 와 보는 건 처음이었어. '여긴 대체 왜?' 혹시나 밀레시안이 어깨 위의 작은 존재를 잊어버린 건 아닐까 불안해진 알터는 밀레시안의 옷깃을 더 세게 쥐며 능청스레 소리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어필했어.


 밀레시안 님? 저는 전투도 못 할 텐데요!”

 괜찮아요.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알터는 밀레시안의 어깨에 딱 달라붙은 채 그가 전투하는 걸 바로 눈앞에서, 같은 시야로 보게 돼. 가장 동경하고 경애하는 영웅과 함께하는 영광스러운 기회에 알터는 가슴이 벅차올랐어. 이런 기회는 아주 드물 테니까. 알터가 예상했던 대로 엘리트 등급의 임무임에도 전혀 고전하지 않고 적들을 손쉽게 처리하였어. 어떤 방에서는 레프리컨이라는 몬스터를 잡고 소지품을 갈취해서 그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미니 포션을 얻을 수 있었어. 얻은 포션을 망설임 없이 전부 입에 털어 넣는 밀레시안의 모습을 보고 알터는 경악할 새도 없었어. 딛고 있던 밀레시안의 어깨가 빠르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알터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밀레시안을 끌어안아야 했어. 이윽고 밀레시안의 크기가 알터와 비슷해졌고, 알터는 짐짓 머쓱한 표정을 하고는 안고 있던 밀레시안을 놓아주었어. 밀레시안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지 알터의 앞에 가까이 서서 서로의 신장을 눈대중으로 비교해 보았어. 그 얼굴은 꽤 흡족해 보이기까지 했어.


 이만하면 우리 크기가 얼추 비슷해진 것 같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이러면 당장은 전투를 못 하실 텐데…….”

 작아져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어요.”


 밀레시안은 금세 복도로 나가더니, 철책으로 막힌 앞방의 벽에 나 있는 쥐구멍 앞에 섰어. 구멍은 소인이 된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은 크기였어. 방 안에 뭐가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알터는 구멍으로 들어가길 주저했지만 밀레시안은 익숙한 일인 양 자연스럽게 앞장서 구멍으로 들어갔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알터 또한 별 수 없이 밀레시안을 따라 안으로 향했어. 방에 들어서자마자 알터는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입을 틀어막았어. 방 한가득 쌓여있는 금화와 온갖 보석들이 눈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오거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 레프리컨이 바닥에 놓인 보물 상자들을 지키고 있는 듯 서성이고 있었어. 레프리컨의 동태를 살피던 밀레시안이 알터에게 커다란 열쇠를 하나 건네주었어. 알터는 제 품에 한 아름 들어오는 열쇠를 받고 나서야 밀레시안이 왜 이런 곳에 들어왔는지, 앞으로 무얼 할 것인지 눈치챘어.


 눈에 보이는 금화는 부피도 크고 얼마 가져갈 수도 없으니까 우리는 저 상자를 노리는 거예요.”

 정말 가져가도 되는 건가요?”


 탐욕을 멀리하고 절제하는 삶을 강조하는 알반 기사단의 일원인 만큼 알터는 설사 레프리컨이라도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것에 마음이 거리꼈어. 반면 전혀 거리낌을 느낄 이유가 없는 밀레시안은 주저하는 알터를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슬쩍 부추겼어.


 저것들도 어차피 다 장물이에요. 오래된 물건들이라 이제 와서 주인 찾아주긴 글렀으니 우리가 가져가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게 오히려 내수 활성에 도움이 된다고요.”

 , 그렇군요. 들키기 전에 어서 가져가야겠네요.”


 내수 활성이라는 억지스러운 말에 열쇠를 안고 있는 알터의 팔에 힘이 들어갔어. 알터의 악의 없는 순수함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밀레시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레프리컨이 뒤를 도는 찰나의 틈을 타, 방 중앙으로 뛰어들었어. 알터도 얼결에 밀레시안을 뒤따랐어. 열쇠를 상자의 구멍에 꽂아 넣는 순간까지도 레프리컨은 그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어. 각각 선택한 상자가 열리면서 오래된 경첩의 삐걱대는 소리가 방에 잔잔히 울려 퍼졌어. 그 소리에 도리어 놀란 알터와 밀레시안이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자신들의 몸 위로 성난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상자 안의 물건을 자세히 살펴볼 새도 없이 잽싸게 들고 도망했어. 들어왔던 구멍으로 다시 달음박질하는데 들고 있던 푸른 돌덩이가 너무 무거웠던 모양인지 알터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 등 뒤에서 레프리컨이 빼앗긴 장물을 놓칠세라 위협적으로 뛰어왔기 때문에 알터는 놓쳐버린 푸른 돌덩이는 포기하고 구멍 밖으로 피신해야 했어. 밖엔 이미 도망쳐 나온 밀레시안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 숨을 고르고 있었어. 밀레시안의 품에 고이 안겨 있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알터가 기침을 해대며 웃었어.


 성공하셨군요!”


 별처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보고 있으니 놓고 온 푸른 돌덩이는 그새 잊어버린 건지 알터의 표정이 한결 환해졌어. 둘이서 작고 값진 전리품을 보며 숨을 가다듬고 있으니 밀레시안의 몸집이 점점 원래의 크기로 돌아왔어. 밀레시안은 알터를 다시 어깨로 올려주고, 보스가 있을 마지막 방으로 가기 전에 장비를 재정비했어. 보스방으로 향하는데도 알터는 그림자 세계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딴판으로 기대감 가득한 낯이었어.


 여태까지 거쳐 온 방에서도 그랬듯, 밀레시안은 보스 몬스터라고 해서 큰 어려움을 겪진 않았어. 보스인 바실리스크는 꽤 강했지만 밀레시안은 그보다 더 강해진 지 오래였기 때문에 허무하리만큼 순식간에 처리되었어. 알터는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지 눈에서 불이라도 뿜을 듯 한껏 들뜬 기세였어. 보스의 숨통을 제대로 끊으면 어디선가 떨어지는 보상 상자를 열어 보니, 알터가 보물 창고에서 흘리고 온 것과 비슷한 붉은 돌덩이가 나왔어. 밀레시안은 알터에게 이 붉은 개조석과 레프리컨에게서 훔쳐온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알터가 한사코 거절했기 때문에 결국 견습생 지원 명목으로 벨테인에 기부하기로 합의를 냈어. 슈안의 우는소리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이견이 없었으니까.


 그림자 임무를 마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후에도 둘은 정처 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녔어. 알반 기사단원으로 있으면 딱히 갈 일이 없을 라흐 왕성 내부를 함께 둘러보기도 했고, 던바튼으로 가서 밀레시안들의 합주를 듣고 즐기기도 했어. 합주가 끝나면 밀레시안의 동료들과 수다를 부리기도 했고, 그러다 지루해지면 의류점이나 여러 하우징을 다니며 예쁘고 특이한 의상들을 입어 보며 놀기도 했어. 이 모든 일들은 밀레시안의 평소 일상과 다를 게 전혀 없었지만, 기사단에 입단하고부터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던 알터에게는 얼마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어. 몸이 작아지긴 했어도 잠시나마 평범한 제 또래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동경하는 밀레시안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야로 함께 앞을 바라본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었어. 물론 밀레시안의 생각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어.


 두 사람은 며칠을 지새우며 놀고먹고를 반복하다가 슬슬 복귀하기 위해 아발론게이트로 돌아왔어. 아직까진 휴가 중이었기 때문에 옹성 너머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게이트 외곽 들판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 각자 무언가 생각하는 듯 오가는 대화는 없었지만 한가로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실바람에 풀 스치는 소리,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폭포의 웅장한 소리가 어우러져 적당히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어. 그러한 고요를 즐기고 있던 밀레시안의 시선이 자신의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알터에게 닿게 되었고, 그의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밀레시안은 마음이 무언가에 의해 서서히 물들어가는 묘한 기분을 느꼈어. 그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터뜨리듯, 밀레시안은 입을 떼었어.


 나는 평소에 이렇게 살고 있어요. 별로 대단하진 않죠?”


 밀레시안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알터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곧바로 대답했어.


 아뇨! 정말 대단하세요!”

 그래요?”

 당연하죠! 밀레시안 님의 평상시 생활겉보기엔 소박해 보여도 절대로 거저 얻을 수 없는 일들이잖아요? 지난날 밀레시안 님이 에린을 위해 몇 번이고 목숨 걸고 싸워주신 덕에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정말 대단하다고요.”


 알터의 말에 밀레시안이 눈을 지그시 감았어. 생각지도 못한 말을 알터에게서 갑작스레 듣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어. '살면서 나에게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적잖이 당황할 정도였어.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감이 잡히지 않은 채 살짝 눈을 떠 보니 알터가 밀레시안을 빤히 보고 있었어. 그 눈빛은 혹여나 말실수라도 한 게 아닐까 염려하는 뉘앙스였지만 그 시선에 압도당한 밀레시안이 급하게 화제를 돌렸어.


 기운 차린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

 작아진 뒤로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많이 걱정했거든요. 그래서 기운을 북돋워 주고 싶었어요. 알터가 즐거웠다고 하니 나도 기뻐요.”

 저는…….”


 말을 이으려는 알터의 몸이 갑자기 들썩이기 시작했어. 밀레시안은 순간 지진이라도 일어난 줄로 착각했지만 바로 앞에서 점점 커지며 올라오는 알터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어. 모습도 모습이었지만 다리를 묵직하게 짓눌러오는 알터의 체중에 놀란 밀레시안이 짧게 신음하자 알터도 놀랐는지 급히 뒤로 물러나다 나자빠졌어.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는 알터의 목울대가 크게 들썩였어. 밀레시안은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휘휘 저었지만 속으로는 새삼 크게 느껴지는 알터의 체구에 놀라 딴생각을 했어. 밀레시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는 알터는 잠시 옷을 가다듬고 하던 얘기를 계속했어.


 , 아무튼 밀레시안 님, 저는계속 아발론게이트에서 보초만 서 있느라 점점 자신감도 잃어가고 자책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런 와중에 실수로 미니 포션을 마시게 돼서 굉장히 우울했었는데 밀레시안 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다시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바로 복귀하는 걸로.”

 어라?”


 등 뒤에서 갑자기 끼어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홱 돌아보니 역시나 익숙한 금발의 기사가 서 있었어. ‘톨비쉬 님!’ 알터가 그의 이름을 우렁차게 불렀지만 기꺼워하는 기색은 아니었어. 밀레시안은 죄짓다 걸린 사람처럼 놀라서는 쿵쿵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고, 반면에 톨비쉬는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다가왔어.


 제가 놀라게 했나요? 하하.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게이트에는 어쩐 일이세요?”

 아르후안 조에서, 더군다나 알터 이름으로 병가신청서가 올라왔길래 걱정이 돼서 한번 와 봤습니다. 아벨린도 많이 걱정하더군요. 뭐 지금은 다 나은 것 같네요.”


 톨비쉬가 아벨린을 언급하자 알터가 갑자기 땅을 박차고 벌떡 일어섰어.


 맞다! 포션 효과가 사라지는 즉시 복귀하라고 하셨어요. 지금 가 봐야 해요.”


 가 봐야 한다는 말에도 밀레시안이 별 반응 없이 멀뚱히 앉아있기만 하자 알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어. 손이 얼굴 앞까지 가까워지니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밀레시안이 알터의 손을 잡았고, 당찬 기운에 의해 힘껏 일으켜 세워졌어. 톨비쉬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시원섭섭한 마음을 뒤로한 채 알터는 밀레시안과 함께 톨비쉬를 뒤따랐어. 성문 앞 다리를 다 건널 때쯤 알터가 밀레시안에게 가까이 다가와서는 혹시라도 톨비쉬가 들을 새라 목소리를 낮춰 속닥였어.


 제가 앞으로 휴가를 나올 일이 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나오게 된다면 그때도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밀레시안이 무어라 대답하려 했지만 성문 앞에 서 있던 슈안과 눈이 제대로 마주쳤기 때문에 말하지 못했어. 슈안은 원래대로 돌아온 알터의 모습을 보더니 맥없이 입꼬리를 올렸어. 그런 슈안과 마주치길 기다린 듯, 알터는 견습 기사들을 위해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며 그림자 세계에서 가져왔던 붉은 개조석과 다이아몬드를 슈안에게 신나게 내보였어. 그 정도의 물건으로는 견습생들의 지원은커녕 알터가 먹은 미니 포션 값 하나만 겨우 메꿀 수 있겠다는 말이 돌아왔지만 알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오히려 미니 포션 한 개로 지난날과 같은 휴일을 보낼 수만 있다면 값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도 있겠다는 엉큼한 생각을 하면서.






Comments